서울 방문 3주차 휘파람

많은 분들이 축하도 해주시고 부럽다 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저 이렇게 잘 지냅니다'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들 많이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한국에서 취업하기는 정말 녹록치 않구나를 느끼고 있다. 2년 4개월만에 온 한국에서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냥 아우 몰라 잘 되겠지 하면서 무작정 놀고 싶은데 성격상-_-;;; 그게 잘 안되고. 저녁에는 그동안 못 본 친구들 만나고 낮에는 동네 작은 카페에 앉아 구직활동하면서 지내고 있다. 오늘은 야근 안하고 일찍 나올게! 하더라도 회사 다니는 친구들과는 거의 7시가 넘어서 만나게 되는데 그녀들은 그녀들 나름대로 많이 피곤하고 힘들겠지만 나는 왜 이리 그게 부러운지. 프랑스에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월급에서 30% 낮춰 부른 연봉이 너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풀이 죽어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놓고, 겨우 프랑스어나 가르칠래? 그의 말에 돌멩이가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하다.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프랑스로 돌아간다. 프랑스가 그립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 휘파람

이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며칠 전부터 새 글을 썼다 지웠다 했다. 실감은 안나는데, 주위 사람들이 잘됐다고 하고 축하한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한다. 처음엔 뛸 것처럼 기뻤는데 지금은 나도 날 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한지. 결론부터 간추려 말하면, 

-한국에 가게 됐다.
-여행이 아니고, 살러간다.
-12월 내로 떠난다.
-평생은 아니고 2-3년 정도.
-사실은 줄리앙이 한국으로 발령난 것.
-집도 비워주고, 차도 팔고 가구도 다 팔아야 한다 + 국제 이사를 준비해야 한다 + 내 직장도 알아봐야 한다.

한국에 와서 살 생각은 없는거야? 라는 질문을 들으면 항상 하던 얘기. 젊을 때 삼사년 살아볼 수 있음 좋긴 좋겠지, 줄리앙도 가고 싶어는 해, 가족들과도 친해지고 한국문화도 더 배우고..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안되겠지, 힘들겠지, 라는 생각이 커서 그랬는지 기대도 안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쉽지 줄리앙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도 아닌데 여기에 번듯한 직장을 두고 한국 가자! 하기는 위험한거다. 게다가 초기에 무척 외로움을 많이 탔던 나는 그에게 투정을 많이 했는데 참을성있게 이야기 들어주고 성원을 보내주는 그를 보면서 여기가 만약 한국이었고 줄리앙이 이렇게 힘들어한다면 그런 그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휴, 내가 힘든 게 낫지. 기운 빠진 사람을 곁에 두고 보는 일은 내 자신이 어지간히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를 믿고 의지하면서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자립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는 사람은 알 혼란기-_-를 거쳐 니스에 정착한 것이 2년 전. 한국 사람들이 프랑스 어때? 하면 가족, 친구가 없다는 것만 빼면 여기가 더 좋아요, 했던 나인데. 이제야 조금 이 곳이 살만해 졌는데. 이제야 조금 여기가 내 집 같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늘 저녁에 뭐해?" 문자보낼 사람들이 한둘 생겼는데. 한국으로 돌아간단다.


한 달 전쯤 몇 달 만에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일 년 반 전쯤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제주도로 간 엄마와는 가끔 통화를 해보지만 건강과 안부를 묻는 것 외에 엄마가 어떤 생각인건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나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을 본 지가 이 년이 넘은 엄마와 딸. 대화는 쉽게 이어지지 않더라. 나는 내 소식을 전해보지만 엄마는 두리뭉실하게 많이 힘들다거나,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전화를 짧게 마치곤 했다. 가끔씩 좋은 곳에 다녀왔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거나, 공연을 보거나 고사리를 캐거나 미역을 따는 등의 재미있는 일과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내가 가장 알고 싶고 듣고 싶은 소식은 듣기 힘들었다.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안정이 되었는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기라도 한건지 하는. 그러다 지난번 격정적인-_- 대화 끝에 알게 된 사실은 엄마가 하루에 열두시간씩 서고 앉고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직업에 귀천은 없는 거지만 그 일을 평생 해오신 분들도 이제는 관둘 나이, 지금에 와서 그 일을 시작한 엄마는 얼마나 온몸이 아프고 힘이 들지 짐작도 하기 힘들다. 모피 입고 사모님 소리 듣던 엄마가 아줌마, 하면 네, 하고 달려나가는 모습 역시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엄마가 '세상에는 나 혼자'라고 느끼며 살고 있다는 거였다. 너무 멀리 있는 나와, 역시 멀리 있어 만나기 힘든 동생. 나한테 가족이 있었나..? 할 때가 종종 있다는 말에 -이때만해도 한국으로 발령, 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던 때라- 시월 말로 계획한 한국행에서 비록 짧지만 엄마 딸이 여기 왔다고 말해주고, 손을 잡고 길을 걷고, 같은 음식을 나누어먹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는 줄리앙과 엄마를 프랑스로 모시고 와서 살 방법을 의논했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회사로부터 한국에 가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이게 꿈인가 생신가 했다. 아, 그래, 하늘이 너 가족들 곁에 좀 있어라, 고 하나보다 생각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눈을 말똥하게 뜨고 이불 속을 뒤척이며 한.국.에.간.다. 다섯 글자를 되뇌이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줄리앙이랑 우리 진짜 한국에 가는거야!?? 이러면서 덩실덩실 붙잡고 춤을 추기도 했다. "나 한국에 가는 게 너무 기대돼!"하는 그는 순수 개발팀에서는 조금 멀어지지만 지금까지 해온 일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일을 해볼 수 있다고 하고, 다행히 전출 조건도 좋다. 나 너무 전형적인 한국 여인네 같을지도 모르지만 한국행이 줄리앙 커리어에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굉장히 컸다. 그가 나때문에 희생하는 건 내가 불편해서 싫어;

다들 와아! 혹은 오오! 이런 반응이고 공부 마쳤겠다, 딸린 애도, 은행빚 갚아야 할 집도 없겠다, 타이밍이 너무 좋다고들 한다.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버린 프랑스와 이렇게 아름다운 니스와 서로 많이 의지하며 지냈던 J언니를 두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많이 일렁인다. 한국에 가면 '프랑스에서 석사하고 온 서른 살 신입'으로서 구직활동 할 것을 생각하니 막 울고 싶기도 하다. (중요한 인터뷰라고 이전 포스팅에 쓴 건 그의 회사 서울 지사에 지원한 거였다. 인턴 기간 동안 일이 너무 즐겁기도 했고, 프-한을 잇는 업무인데다, 프랑스에 돌아왔을 때 계속 일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그런데 뭐, 잘 안됐다;;) 잘나가는 남편 덕에 호강한단 소리는 (<-남동생이 한 말) 듣고싶지 않다 -_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잘 될까? 휘파람

괜히 설레발 치다가 될 것도 안될까봐 말 못하고 끙끙거리지만 결국엔 남들이 궁금해하기도 전에 다 불어버리는-_- 성격이라 어릴 때고 지금이고 미스테리어스한 사람은 못되는 것 같다. 내일 중요한 면접이 하나 있는데, 이 면접 결과에 따라 굉장히 많은 것들이 결정되고 상황이 바뀔 예정이다. 꼭 이 길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막상 일을 시작했는데 더럽게 힘만 들고 별로일 수도 있지만..그래도 좋은 쪽으로 피드백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국의 취업난과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봐도 결코 적지 않은 나이를 생각했을 때 이 길이 가장 내게 경제적/직업적인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을 듯. 그러면서도 커리어 상으로는 집중력과 인간관계와 영어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스킬을 요구하기 때문에 큰 모험이 될 것 같다. 이거 잘되더라도 몇 달은 화장실가서 어우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미쳤어 미쳤어 내가 이걸 어떻게 해 이러면서 질질 짤 내가 벌써 눈앞에 그려진다-_ㅜ 나는 어떤 그룹에 속했을 때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걸 잘 못참는다. 이게 참 재수없게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어릴 때부터 '이건 내가 잘 못할 것 같다' 싶으면 아예 시작을 안했다. 그래서 어릴 때도 못했고 지금까지도 쭉 못하는;; 것들이 참 많고, 나중에 어쩔 수 없어서 배웠는데 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내가 이걸 옛날에 배웠으면 지금쯤 엄청 유용하게 써먹고 있을텐데, 하고 후회하는 때도 잦다. 이제 나이 서른, 육개월 지나면 만으로도 빼도박도 못하는 계란 한 판;;이 되는데 한 번 사는 인생, 못하면 좀 어떠냐, 하면서 되도록 많은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이런 바람직한 생각을 오 년 전에만 했어도 내가 지금 이러고 살질 않지 ㅠㅠㅠ

안정과 모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2011년 10월, 하나의 끝 휘파람

오래 자리 비웠다가 돌아온 게 처음도 아닌데 또 오랫만이네 어쩌네 하는 것이 어색해, 언제 그랬냐는 듯 최근 본 영화 감상을 남겨보지만, 글쓰는 감각은 완전히 잃은건지 저렇게 성의없는 몇 줄에 마음에 드는 스틸 이미지 몇 장을 올렸을 뿐.. 다시 열심히 블로깅을 하게 될 지 의문이 든다.

그래도 이웃들 블로그는 거의 빠지지 않고 본 듯. 나도 뭘 좀 써야 할텐데..가슴에 부담을 가진 채로.

잘 지냈고, 아주 알차게 놀고 일한 2011년 여름이었다. 여름을 맞이할 준비로 한창이던 유월, 우리에겐 미래가 없고, 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아무 것도 기대해선 안되며, 하지만 줄 수 있는 것은 다 주겠다, 라는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말을 들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없던 바람도 생겨나고 마음에 욕심이 생겼다. 어디까지 줄 수 있는지,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내가 '조종'할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나 너무 나쁜 여자. 어른스럽고 조심스러운 행동에 마음만 조급했다. 그러면서도 바라고 기대하는 입장에 있는 내가 싫어서 아닌 척 꾸미게 되고.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내 모습은 사라지고. 칭찬받았던 나의 '사랑과 긍정의 눈'은 의식을 하면 할 수록 불만스럽고 나약한 나의 다른 반쪽에 의해 점령당하는 것 같았다.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마음과,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한숨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회사 일에 몰두했지만 다시 마음을 잡는 데에는 두 달이 걸렸다.

지난 금요일에는 6개월간 동고동락한 팀원들, 그리고 ED동 옆 팀 사람들과 팀 전통에 따라 인턴 마지막을 기념하는 아침식사를 했다. 사람들이 한국식 커피믹스를 타서 얼린 아이스커피를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커피 두 통하고 작은 케이크를 하나 굽고, 미니 크로아상과 빵오쇼콜라를 스무 개 쯤 사갔다. 발레리는 je veux pas que tu partes! 내가 안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거짓말 안보태고 네 번 쯤 했고 (프랑스 사람에게서 이런 얘기 듣기 쉽지 않기에 사실 더욱 고맙고 기뻤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볼인사를 하는 나를 사빈은 두 팔로 꼭 끌어안아 주었다. 줄리앙이랑 가라고 4성급 호텔직업학교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학생들이 직접 요리도 하고 서빙도 하는) 이용권도 선물로 받고, 포트폴리오 마케팅 팀은 아마데우스 로고가 새겨진 usb 키니, 펜이니, 인형이니, 하는 것들을 잔뜩 챙겨주셨다.

너무 큰 회사라 인간미가 없네, 직원들끼리의 유대감이 부족하네, 했었는데. 확실히 중소기업과는 분위기도, 문화도 다르지만 (사내식당에서 점심 먹는 걸 제외하면 회사 밖에서 만나거나 뭘 같이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반 년을 지내면서 이 곳 나름의 사람 사귀는 법을 체득한 것도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달까. 지인들 총동원해서 구직활동에 도움을 주신 분들도 너무 고맙고.. 조금 큰 물에서 놀아보자, 하고 인턴 후 채용될 가능성 100퍼센트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 인턴을 거절한 후 들어간 거였는데. 실제로 그 자리에 들어간 학교 동기는 오퍼를 받았고,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게다가 평생 갈 것 같은 친구 루카스 (두번째 사진 속에 어깨에 스웨터 두른 아이 - 연보라색 스웨터라니, 정말 게이같아! 하며 놀렸다 ㅋㅋㅋ)를 만난 곳도 여기. 인턴 마지막 날 저녁에 자기 집에 와서 아페리티프 한 잔 하고 같이 니스 시내에 나가서 저녁이나 먹자길래 알았다고 했는데 그의 집으로 갔더니 친하게 지냈던 인턴들이 모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서프라이즈 너무 좋아하는데 ㅠ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에 완전 감동. 스웨덴에서 자란 루카스는 일견 굉장한 개인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세심하고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다. 인턴 무사히 끝난 걸 축하해! 잔을 부딪히고 비우면서 와, 나 이렇게 사랑받고 있구나.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사람을 오래 두고 만나는 편인데 외국에 살게 되면서 최고로 아쉬웠던 것이 사람. 친구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들과 보낸 시간들. 이십대 후반에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진짜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지금은? 살며시 고개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의 우정과는 비교가 안된다. 더 깊거나 더 얕은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색이 다르다. 다름에서 오는 풍성함과 결국은 우리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의 짜릿함. 이런 우정도 꽤 괜찮다.

인턴쉽 레포트도 제출했고, 발표도 마쳤다. 이로써 석사 학위를 위한 학생으로서의 임무는 끝. 이제 더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것. 야호 소리지르고 방방 뛰고싶은 마음과 침을 꿀꺽 삼키게 되는 불안함이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작은 막이 내렸다. 축하해 릴로. 삼 년 동안 잘해줬어.

Restless - 너를 만난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 노래를 해. 휘파람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안보신 분들은 나중에 읽어 주세요.


3주 전에 본 구스 반 산트 감독의 restless. 매일 밤이 찾아오면 죽는 줄로만 알았다가 아침이 되고 다시 태양이 떠오르면 살아있음이 행복해서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는 새의 이야기와 말기 암 환자인 아나벨의, 얼마 남지 않은 생과 자연을 사랑하는 방식. 더이상 살아있음이 달갑지 않아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죽음을 기웃거리는 이녹.


죽음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정작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녹에게 가르쳐주고 떠나는 아나벨과 그토록 사랑한 그녀의 죽음 앞에서 웃음을 띄우는 이녹. 죽음을 준비하는 법을 알려주겠노라 하고 시작한 그들의 사랑에서 아나벨은 이녹에게 삶을 되찾아준다.


오랫만에 시워언-하게 좀 울어볼까, 티슈까지 준비하고 들어갔는데, 슬프기는 해도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영화였기에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미소 지으며 감상할 수 있었다.

아우 근데 얘네 왜 이렇게 풋풋하고 싱그러운거야 -_- 






1 2 3 4 5 6 7 8 9 10 다음